무너져버린 유학의 꿈

“나랑 결혼하고 유학 갈래?”

나는 어릴 때부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다른 나라에서 공부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가난했다. 20대 초반, 일본에 있던 언니 덕에 일본 유학을 떠났지만, 비싼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어학과정만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나는 유학할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유학생들과 다른 나의 신분 차이를 느끼고 말았다. 짧은 어학연수를 계기로 나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나의 신분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움에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경험과 지식에 목말라하며 끊임없이 공부를 했고, 실패했던 유학을 꼭 다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내게 해외유학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른 살이 다 되면서 직장에서 인정도 받고 또래보다 높은 급여로 여유로운 삶으로 전환은 되었지만, 몇 천만 원이 넘는 유학자금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은 내게 꿈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결혼자금을 모아 유학자금으로 쓰는 것이었고, 이것은 정말로 명쾌한 해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비신랑의 결혼자금까지 합친다면 돈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몇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유학자금으로 쓰는 건 불안하고 결혼자금으로 쓰는 건 안심이 되었던 이유는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결혼하면서 쓰는 돈은 모두에게 당연하듯 나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느껴져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유학 가기 탁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남자 친구가 마침 퇴사 후 삶의 방향 전환을 위해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힘든 사회생활을 접고 장기간 재충전 중이었고, 자신의 직업을 바꾸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터였다. 이 시점에서 유학을 가는 것이 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며 콧대 높게 치켜세우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유학을 떠날 계획을 생각하다 보니 너무나 설렌 나머지 나는 그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이때만 해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요하는 건지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게 내 뜻대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1년 동안 그는 한량 그 자체였다. 나는 세상에서 그처럼 여유만만한 사람을 두 번째로 본다. 첫 번째 한량은 일본에서 함께 지내던 여동생인데 그녀의 한량 짓은 상상을 초월했다. 밤새 술 마시고 첫차도 아니고 9시 이후의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일도 자주 있었고, 나가려고 하면 2시간 동안 준비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리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먹으려고 기다리다가 숨이 넘어가곤 했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렸다. 자전거를 못 타서 내 자전거를 뛰면서 따라오는데도 걷는 속도였다. 덕분에 나는 걷는 속도로 자전거 타는 기술이 늘었다. 글 내용과 상관도 없는 그녀의 이야기를 이렇게 장엄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런 그녀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지금 나의 남편이다. 한량 그녀는 그래도 좋아하는 그림을 자주. 열심히. 그렸다. 끊임없이. 그런데 나의 남편은 온전하게 놀 줄만 아는 완벽한 한량이었다. 술 마신 다음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술 안 마신 다음 날은 오전에 수영과 요가를 하고 독서를 했다. 30대 한국 남성인 그가 함께 레슨 받는 아주머니들과도 잘 어울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듯하여 신기하기도 했다. 날이 좋으면 야외 공원에서 하루 종일 햇살을 받으며 비타민D를 섭취하고는 날 만나 카페에 가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나와 만나지 않는 날에는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나의 관심을 거부했다.

“나 노는 거 안 보여?”

평소에 다정한 모습의 그이지만, 내가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것을 싫어했다. 기분 상해서 전화를 끊고 나면 나는 새벽 분위기에 취해 독서를 하곤 했다. 그가 술을 덜 마신 날은 새벽 몇 시이든 우리 집 창문을 두드렸고, 술이 한가득 들어간 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결혼하고 알았지만 주량이 넘으면 어디서든 잠들어 버리는 거였다. 벤치나 자기 차나 지하철이나… 어디든. 이를 확실히 모르고 있던 나는 결혼 후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자행한다. 

한량같이 게으른 남자 친구에게 나는 프러포즈를 한 거였다. 우리 집 거실에 앉아 맥주 한 캔씩 마시며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던진 프러포즈였다. 

“내가 찾는 배우자의 조건은 사람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여기는 사람, 인생관/가치관이 나와 비슷한 사람, 함께 하면 즐거운 사람인데 찾은 것 같아. 우리 결혼하고 유학 갈래?”

“그래? 그래. 결혼하자.”

그는 별 일 아니란 듯, 무심한 듯 대답했다. 내가 결혼 얘기 꺼내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거 다 알고 있는데 말이지. 엄청나게 행복하면서!

내가 영화를 보여주면 본인의 적립카드를 내밀고, 장을 보면 장바구니 손잡이 한 짝을 내게 내미는 그는 내가 만난 남자들 중 여자인 나를 가장 평등하게 대한 남자이다. 적절한 우유부단함은 나를 억압하지 않고, 사소한 일상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은 내게도 행복감을 줬다. 사실 사람이 좋기도 했지만, 타이밍 또한 좋았는데 바로 그가 백수였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결혼과 함께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나의 계획적이고 치밀한 성향에 그의 우유부단함과 한량스러움은 극도로 빛이 나 보였다. 나는 결혼과 함께 유학을 원했고 그는 나의 모든 계획에 동조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는 판단하에 나는 결혼 준비와 함께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나의 결혼 겸 유학 계획은 아주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결혼식 3개월 전, 백수로 지내던 남편이 갑자기 친척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니, 뭐야? 1년이나 백수로 있더니 왜 갑자기 회사를 들어가?”

백수인 너하고 결혼하고자 결정한 이유는 유학 가고 싶어서였다라고 소리쳐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떼지는 못했다. 나는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이야기하던 그 모든 과정을 한 번에 뒤집어 버리고 배제해버린 그에게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여러 차례 그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똑 부러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가 그에게 프러포즈를 한 이유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얼렁뚱땅하고 우유부단한 그리고 한량 선비 같은 차분함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나는 계획을 망가뜨린 그를 용서하고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여동생이 우리 부부의 집에 놀러 왔다. 이곳 말레이시아로 오기 한 달 전이었는데 내 동생은 우리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떠나는 이유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원래는 결혼하면서 유학 가기로 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전후 사정을 알리 없는 동생은 왜 그때 가지 않았냐고 물었고, 나는 울분에 터져 남편에게 그때 진짜 왜 그랬냐고 다그쳤다.

“… 나는 쩡이가 유학을 정말로 갈려고 하는지 몰랐어.”

“What!!!??? 뭐라고?????”

남편은 조금 머뭇거리더니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결혼 7년 차에 듣게 된 그의 대답은 어찌나 터무니없던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편은 당시에 어떤 결정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결혼해서 살다 보니 그가 왜 유학 계획을 안 믿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남편에게 [할 거다]는 그저 [하고 싶다]의 의미로 풀이된다. 그에게 [결혼하고 유학 가자]는 [결혼하고 상황 봐서 몇 년 후 유학 갈지 말지 결정하자]라고 들렸던 것이다. 

“앞으로 나랑 살면서 내가 할 거라면 정말로 하는 줄 알아! 알았어요?”

동생 앞에서 으름장을 놓은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지만, 한 달 후 예정된 해외 살이 계획 전에 또 한 번 취직과 비슷한 갑작스러운 행동을 할까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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