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고 적극적인 도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삶의 행복감 또한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선을 지키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다. 사회적 거리는 신체적 거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 거리도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거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보통 가까운 사이에서 조언과 추천 등의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상호 간의 감정의 혼란이 생긴다. 어제 우리 직원 한 명이 나에게 조깅이 정말 좋다고 추천을 했다. 사실 이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실물이 나지만 나를 위한 마음이라는 걸 알기에 그냥 들었다. 나는 조깅이 맞는 성향이 아니다. 밖에서 뛰어다니는 것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실내 러닝머신을 이용하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헬스장을 찾지 못하고 여러 고민 끝에 필라테스 센터를 끊고 거의 한 달이 되어 가던 참이다. 시간여유가 많지 않기에 나는 매일 할 수 있고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고민하며 신중하게 결정했다. 이 과정을 그 직원 또한 알고 있었다.
조깅을 해야 한다고 추천을 반복하는 직원에게 나는 알았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조깅을 하지 않을 것이고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직원은 내가 조깅을 할 수 있는 시간까지 확인하며 해보면 자기에게 고마워할 거라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을 넘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해요. 하지만 내 일상은 내가 결정할게요. 나는 지금이 좋아요.”
기분 나쁘게 전달되지 않았기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런 말까지 하고 안도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생각하는 정서적 거리의 경계는 ‘상대에게 선택권을 주느냐’이다. 꼭 해야 한다고 확신에 차서 상대를 조정하려고 하거나, 선택권을 준 척하면서 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같은 말을 한다면 이것은 강요이다.
나는 상대가 반복해서 추천을 하면 너무 불편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내게 참고사항일 뿐이지 결정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원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일 경우 도움 주려는 상대에게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첫째,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를 고집 있는 사람으로 저평가한다.
셋째, 거절하면 상대 기분을 생각하지 않는 예의 없는 사람으로 본다.
보통 자기 결정권을 충실하게 사용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본인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님을 잊지 말길.
추천은 한 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