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두 달만 지나면 한국의 삶을 정리한다. 이민을 간다거나 긴 시간 해외살이를 계획하거나 한 상황은 아니지만, 언제 들어올지 계획을 딱히 세워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마음은 제대로 갖고 있다.
한국을 잠시 떠나 있기로 결정한 후 아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게 역시 인간관계이다. 나에게 가장 크게 와 닿는 아쉬움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가 현재 몸담고 있는 비즈니스 모임을 떠나는 거고, 두 번째가 7살이 된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을 떠나는 거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풀씨학교를 떠나는 것은 그저 아쉬운 마음만 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의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다. 나에게 풀씨학교는 진정한 교육기관, 내 아이를 한 명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믿음직스러운 학교였다. 우리 아이가 7살이 끝나는 시점까지 풀씨학교를 다니지 않고 떠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대놓고 풀씨학교를 자랑하고 널리 널리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솔직히 말하면 풀씨학교에서 홍보활동을 너무너무 못하셔서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려고 나서는 거다. 이런 유치원과 선생님들이 많아야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도 바뀔 거고 부모들도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교육환경도 조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단점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근에 내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에 유치원 내의 성역할 구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적도 있다. 그리고 공동육아의 방식에는 아빠와 엄마 모두가 존재하는 [정상가족]의 개념이 너무나 깊이 있게 들어있기 때문에 모든 가정이 풀씨학교를 선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광명 또는 부천 옥길동 근처에 사는 유아가 있는 부모라면 꼭 풀씨학교를 보내시라 말하고 싶다.
나는 우리 아이가 5세 때 다른 유치원을 보냈다. 당시에도 풀씨학교를 찾아서 알아봤지만 맞벌이를 하면서 도저히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1년 간 다른 유치원에 보내면서 나는 나의 선택을 한없이 후회했고, 6세가 되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풀씨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 풀씨학교는 3시가 하교였기 때문에 온전히 일하는 것을 포기하듯이 각오를 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아이를 풀씨학교에 입학시킨 후 돌봄 교실이 생겨서 7시까지 편하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풀씨학교를 다녀온 1년 3개월 동안 우리 가족의 삶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와 아이의 모습도, 남편의 모습도 많이 성장했고 편안해졌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인성교육을 중시하고 공부를 배제하고 싶었던 나의 교육에 대한 철학은 풀씨학교와 잘 맞았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아이의 교육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도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나 즐겁게 글자를 찾아가고 스스로 공부해나가고 있다. 내가 추구하던 방향이 맞았다는 것이 당연하다기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는 어릴 때 놀아야 해.”, “아이는 어릴 때 인성을 길러야 해.”라는 말을 스스로 하면서도 주위의 많은 시선들과 싸우며 나의 교육관을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풀씨학교에 오기 전의 나날들을 보상받은 것만 같은 안도감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풀씨학교를 적극 추천하는가?
첫째, 풀씨학교는 비영리기관에서 운영한다.
이번 유치원 비리 사태에서 많은 부모들은 학습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들에 의해 우리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할 수 있는지를, 아이들을 부모가 지켜내지 않으면 항상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이다. 이러한 시끄러운 과정에서 풀씨학교의 부모들은 먼산 보듯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육은 비영리사업이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아주 간단한 방법은 교육사업을 영리 사업으로 운영하는 개념 자체를 이 사회에서 근절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부모로서 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은 나의 아이를 비영리기관에 보내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둘째, 풀씨학교의 아이들은 건강한 음식을 실컷 먹는다.
우리 가족은 풀씨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몸에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하는 귀찮음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왜 굳이 비싼 유기농을 먹어야 하는지, 왜 굳이 국산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지만 너무나 귀찮아지는 일상이 싫었고,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행동들을 기피하고 살아왔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우리 집은 채식을 즐기며 충분히 좋은 식단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우리 아이가 나물과 각종 국을 좋아하는 올바른 식습관을 가졌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풀씨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먹이는 모든 음식을 유기농으로 먹이고 있었고, 나 또한 그에 맞춰야 했기에 건강한 음식에 대한 개념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겠구나. 내가 아무거나 먹는 것도 안되는데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아무거나 먹이면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몸에 건강한 음식과 재료는 마트에서 사재기할 수 있는 음식과 재료와 맛이 달랐다. 이제는 건강한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우리 아이를 자연 그대로의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주는 풀씨학교에 감사한다. 그리고 비용이 더 나가도 100% 유기농, 국내산만을 아끼지 않고 먹여주는 정성에도 감사한다.
부침개, 주먹밥, 쑥떡 등 돌봄시간에 주는 간식은 양도 풍족하여 아이가 저녁을 거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잦다. 배 터지게 먹고 와서 저녁을 못 먹겠다는 아이에 말에 또 한 번 감사한다.
셋째, 지도편달은 있지만 강압은 없다.
나는 한국사회의 조직문화, 규율, 규칙에 의한 보편화된 사고가 싫은 사람이다. 선생님과 부모, 직장상사, 사장 등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자신이 지도하고 이끌어줘야 하는 상대에게 지시를 하고 강압적이게 끌고 가는 방식이 너무 싫다. 따라서 내가 다녔던 교육시스템이 너무 불편했고, 지금도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경쟁을 유도하고 사고의 틀을 가둬버리는 교육환경에 아이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잘 어필하고 서로 토론하며 그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많이 경험했으면 했고, 바로 풀씨학교 교육이 그랬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대화”라고 하면 이 정도는 교육을 잘 받은 인성이 바른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씨학교 선생님들은 이 수준을 뛰어넘는다고 호언장담 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생떼를 피우거나, 친구들과 큰 트러블을 만들었거나, 버릇없는 행동을 했거나, 단체 활동에서 개인행동을 하더라도 언제나 아이의 의중을 파악하고 문제를 인식시키는 과정에 노력을 기한다. 문제를 인식시키는 과정은 절대로 강압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다. 아이와의 충분한 대화를 하거나 모두가 모여서 토론을 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억지를 부릴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다. 울면서 슬퍼할 수도 있지만, 선생님들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별개로 대응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어른의 눈치를 안 보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생긴 이유를 풀씨학교 선생님들의 대응방법에서 찾았다.
넷째, 말만 하는 공동육아가 아닌 부모 같은 선생님들이 있다.
나는 풀씨학교 선생님들을 다 좋아한다.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오해를 하려고 하면 조금씩 신경 쓰이는 부분들은 있었지만, 이러한 사소한 일들이 풀씨학교 선생님들을 믿는 내 마음을 흔들지는 못한다. 담임선생님이 제2의 부모라는 믿음은 반모임을 하고 상담을 하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아이에 대해, 다른 아이들에 대해 세세하게 관찰하며 세세하게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언행은 앞뒤를 잴 필요가 없이 감사한 일이다.
이 분들은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한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줄 아는 인성이 바른 분들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우리 아이를 그저 어린아이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 때문에 심적으로 자꾸만 의지하게 된다.
작년에 담임선생님이 이런 나의 마음을 느끼셨는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희만 너무 믿으시면 안 되시고 집에서도 함께 교육해 나가며 같이 힘써주세요.”
너무나 뜨끔했다. 한없이 믿다 믿다 내가 해야 할 부모로서의 역할까지 잊고 있던 것이 맞았던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고, 내가 한없이 믿어버렸다는 사실까지도 정말 감사했다.
다섯째, 놀 줄 아는 아이가 된다.
풀씨학교의 카페에 들어가면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있다.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자라는 아이들, 자연이 있는 놀이학교”
놀이학교는 여기저기 참 많다. 숲학교도 좋은 곳이 많다는 것도 알고 글로벌 교육을 겸비한 놀이학교도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떤 놀이학교도 풀씨 학교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놀이에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는 건강한 신체이다.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신체가 건강해야 놀래도 놀 수가 있는 거다.
둘째는 노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이다. 놀이는 창의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이면서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에서 초등학생 오빠와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놀이 방법을 배웠다. 어린 나를 껴주고 규칙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놀이 방법을 알았고, 나중에는 친구들과 동생들과 놀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풀씨 학교는 이 두 가지를 중시하며 놀이를 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신체적 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을 굉장히 규칙적으로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활동도 함께 한다. 풀씨학교 뒷산에는 볍씨학교 학생들이 만들어놓은 직접 만든 놀이터도 있고, 언덕에는 긴 밧줄 하나(이거 잡고 경사 높은 언덕을 다섯 살 때부터 오름), 몸터에는 천장에 그물들이 있어서 몸놀이를 하는 것이 일상이다. 또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을 하는 아이는 스스로를 통제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운다고 생각한다.
풀씨학교의 놀이들은 우리가 어릴 때 했던 놀이들이나 새로운 놀이여도 관계지향적이고 물질 기반이 아닌 놀이가 대부분이다. 종이접기를 하거나 미니카 대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땅따먹기, 실뜨기 등 과거의 놀이부터 현재의 놀이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창의적이게 바꾸며 놀곤 한다.
여섯째, 아이다운 것을 당연시한다.
내가 풀씨학교에 보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것이 첫 OT였다. 그 난장판 상황. 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보고 있는 사람들도 그 상황을 적응하기 어려웠다. 부모와 아이들이 모두 모인 첫 OT에서 선생님들은 열심히 준비한 영상 및 화면을 보여주며 부모님을 상대로 열심히 진행하셨다. 놀라운 점은 그 상황에서도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신입생과 재학생 아이들이 아닌 선생님들의 태도였다.
시끄럽던 정신없던 선생님들은 차분하게 할 말들을 이어가셨고, 어느 누구도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느니 뛰지 말라느니 하는 사람이 없었다. 풀씨에서 아이들은 활동계획이 없는 자유시간에는 마음대로 뛰어도 되고 마음대로 떠들어도 된다. 그저 위험한 행동만 안 하면 될 뿐.
전에 다니던 유치원에서 뛰어다닌다고 혼나던 우리 아이가 실컷 뛰어도 되는 곳으로 왔다고 생각하니, 혼날 필요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풀씨학교에서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질이 존중되고, 아이이기 때문에 갖는 호기심이나 언행들을 최대한 열어두며 아이들을 지도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무조건 풀어두고 교육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이들이 훈육을 받는 순간은 위험하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올바르지 않은 언행을 했을 때이다.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남았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풀씨학교와 같은 교육관을 가진 부모들에게는 충분히 어필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좋은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고, 이런 교육기관을 찾는 부모가 많이 늘어나서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풀씨학교의 엄청난 단점을 공개하자면,
첫째, 1달에 한번 부모가 한 학년(20명 정도) 아이들의 반찬 2가지와 과일 1가지를 준비해서 보내야 한다.
둘째, 아빠 도시락 편지가 있어서 아빠들은 매일매일 아이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셋째, 가족모임, 반모임, 상담 등의 행사들에 참여하는 시간들이 적지는 않다. (강요는 아님)
넷째, 등대 모임이라고 해서 아이와 함께 부모도 성장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유익한 모임 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은 1달에 1회, 일 안 하는 사람은 1주에 1회)
솔직하게 단점을 적었지만, 이 단점을 무시할 만큼 가족 모두에게 좋은 곳이 풀씨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