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우리 집 테이블에 넷이 앉았다.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커플 데이트를 하다 보니 깊은 대화가 부족해지는 것은 또 다른 단점이었다. 오늘의 대화의 주제는 수경이가 은근슬쩍 시시 때 때로 불만을 토로하던 ‘집안문제’로 정했다.
수경이는 유난히 시댁관의 관계를 힘들고 부담스러워한다. 나 또한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완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수경이를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다. 남자는 사위 대접을 받고 여자는 며느리 취급을 받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의 수경이에게는 긍정적인 이야기와 해결방안이 필요한 것이니 개인사는 접어두고 말해야 한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집안문제가 구체적으로 뭐야?”
수경이가 잠시 머뭇거리는 새 철이가 한마디 한다.
“나는 수경이랑 엄마랑 좀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모든 남자들의 희망사항이다. 자신의 엄마와 아내가 친하게 지내는 것.
그러는 그들은 장모님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철이도 마찬가지이다. 철이 말을 듣더니 수경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시댁에 자꾸 가게 되는데 가면 눈치 보여서 그 시간이 힘들어. 어머님이 나한테 너무 편하게 대하시고 솔직하신 게.. 부담스러워.”
당연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난 사이는 일방적인 소통만이 가능한 관계로 전락한다. 첫 만남부터 상하관계로 형성된다. 가부장제도의 산물인 걸까? 권력의 서열에 남자가 있고 그다음에 시어머니, 그다음이 며느리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연락 없이 집에 오고, 내가 정리한 냉장고를 마음대로 열고, 갑자기 오라고 부르고, 용건이 없어도 안부 전화하라고 하는 일은 많은 며느리들이 겪는 일이다. 정말 친해져야 할 수 있는 행동을 친해지는 단계도 없이 갑자기 요구당하는 것 아닌가. 베스트 프랜드보다도 더더욱 친한 척. 평생 같이 살아온 우리 엄마나 형제자매보다도 더더욱 친한 척을 해야 할 수 있는 것들이 며느리들에게는 의무가 된다. 무뚝뚝하고 친해지는데 오래 걸리는 수경이에게 이런 며느리의 의무는 벅찬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너네 어머니는 강압적이지도 않으니 조금씩 친해지면 되는 거 같은데? 아니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잘 지낼 수 있잖아?”
사실 사위는 장모님과 친해지려고 노력 안 하는데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친해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경이의 부담스러움이 뭔지 더 꺼내기 위해 한 질문이다.
“언제는 드라마 보시다가 큰며느리가 일만 하고 둘째는 농땡이 치는 내용을 보시더니 수경이가 저 드라마처럼 첫째면 묵묵히 그냥 일만 할 것 같다고 하시는 거 있지. 그럼 난 묵묵히 집안일이나 하란 소리인가?”
이건 분명히 수경이가 이상하다. 어머니는 나쁜 뜻에서 말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혼자만의 상상만으로 의도를 나쁘게 해석한 수경이가 이상한 게 맞다. 시어머니는 아들만 챙기고 며느리에게는 진심이 없을 거라는 편견을 수경이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야~ 그건 너무 부정적인 해석이다. 네가 묵묵하게 듬직한 첫째 며느리처럼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 뭐, 이렇게까지 좋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나쁘게 해석해서 스스로 기분 나쁠 필요는 뭐야?”
“시댁에선 철이가 꼼짝도 안 하는데 어머니가 나한테만 일시키니까 그렇게 느껴지지..”
“음? 철아. 네가 얘기 좀 해봐.”
철이는 수경이와 내가 자신의 집안 얘기를 하는 중인데도 끼어들 생각이 없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이나 수경이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느낌이다. 내 남편이 전해준 따뜻한 레몬차를 두 손으로 감싸면 철이가 조심스레 말한다.
“집에 가면.. 나도 할 건 하는데..”
철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경이가 끼어들었다. 시댁 식구들과 있으면 손까딱 안 하는 철이가 너무 밉고, 도와달라고 하면 형이랑 게임하면서 본인 말을 무시하는 것이 화가 난다며 토로하듯 말했다. 앞뒤 맥락을 들어보니 철이가 좀 노력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수경이가 시댁을 멀리하고 싶은 것은 시댁이 싫어서가 아니라 철이의 태도가 싫은 것 같다. 거기에 덧붙여서 아직 어머니와 친밀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어색한 것으로 보인다.
“내 얘기 진진하게 들어줄래? 너네가 이혼한 것에 있어서 집안문제는 절대 번외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특히 철이는 객관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 불편한 감정 없이 편하게 들어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오늘 집안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했지? 그런데 수경이네 집, 친정에 대한 이야기는 나온 것이 없어. 철이에게 처가댁 문제가 없고, 수경이에게 시댁문제가 있다는 게 결코 철이가 잘하기 때문은 아닐 거야. 한국사회에서 사위와 며느리는 서로의 집안에서 대하는 것부터가 다르잖아. 장모는 사위에게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철이 너는 알아야 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며느리인 수경이에겐 당연한 의무 같은 것들이 많을 거야. 시댁에 가면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이유지. 이러한 부분을 철이가 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철이가 수경이가 원하는 해결방안을 듣고 따라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철이와 수경이는 한참 조용하다. 둘 표정을 보면 철이보다 수경이 머리가 훨씬 복잡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해결방안을 얘기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지만 철이가 어떤 논리를 가정한 반대의견을 내기 전에 수경이가 말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바로 질문했다.
“수경아, 말해봐. 그래서 너의 그 불만 가득한 상황이 철이가 어떻게 하면 해결될 것 같아?”
“아.. 평소에 생각하던 거 말하면.. 시댁에 있을 때 철이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어. 불편하니까. 그리고 어떤 안 좋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머니보다 내 편에 서서 대화해주면 좋겠는데.. 어머니 없을 때라도. 사실 제일 원하는 건 우리가 사이가 좋아질 때까지 가능하면 멀리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야.”
- 친정이나 시댁에 가면 항상 붙어있기
- 무슨 일이 있든 배우자의 편에 서서 말과 행동하기
- 당분간 친정 시댁 왕래 없이 둘만에 생활에 집중하기
다행히 수경이의 요구가 철이에게 대단하게 힘든 일은 아닌 듯하다. 철이 또한 수긍하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거 보면.
그럼, 이제 집안문제가 둘 사이를 방해하게 하지 말자.
이렇게 일단락되어 당분간 잘 지낼 수는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걱정스럽다. 시댁 근처에 사는 이 부부가 친정보다 시댁을 가는 일은 잦을 수밖에 없을뿐더러, 상남자 스타일 철이가 시댁에 가서 수경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행동을 할리가 만무하다. 또한 며느리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시어머니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시어머니로 보는 수경이 또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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